촉법소년 연령 하향 (현장 배경, 시스템 분석, 향후 전망)
경찰 앞에서 "우리 촉법소년인데 어쩔 거냐"고 비웃는 영상이 퍼졌을 때, 솔직히 저도 멍했습니다. 법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법을 방패 삼아 피해자를 비웃는 장면이었으니까요.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의가 이달 말 마무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숫자 하나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소년 범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법의 테두리 뒤에 숨은 아이들, 현장에서 목격한 현실
촉법소년(觸法少年)이란 범죄를 저질렀지만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을 뜻합니다. 현행 소년법 체계에서 이들은 형사 피고인이 아닌 보호 처분 대상으로 분류되며, 검찰 송치나 전과 기록 없이 가정법원의 판단을 받게 됩니다. 이 기준이 처음 만들어진 건 1958년입니다. 그 이후 60년이 넘도록 기준선은 그대로입니다.
제가 커뮤니티와 교사 지인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들은 꽤 구체적이었습니다. 무인 점포에서 수백만 원어치를 파손하고 금고를 털어도, 가해자가 만 13세라는 이유로 형사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피해 소상공인은 민사 소송을 걸어도 미성년자 부모와의 지루한 싸움을 감수해야 하고, 실제 배상을 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법이 가해자의 갱생을 위해 설계됐다는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갱생 대상도 아니고, 배상 대상도 아닌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두 달 안에 결론을 내자고 제시하면서, 성평등가족부 주도로 사회적 대화 협의체가 꾸려졌습니다. 1차 공개 포럼 이후 전문가·현장 관계자 논의가 이어졌고, 200명 규모의 시민 참여단 토론도 예정돼 있습니다. 형사미성년자(刑事未成年者)란 형법상 책임 능력이 없다고 간주되어 형사 처벌을 면제받는 연령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현재 논의의 핵심은 이 연령 기준을 14세에서 13세로 낮출 것인지 여부입니다.
저는 이 논의가 7, 8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반복됐다는 사실이 더 씁쓸합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론이 들끓고, 조용해지면 흐지부지됐던 패턴을 이번엔 끊어야 합니다. 다만, 그 방향이 맞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숫자 하나의 함정, 연령 하향 논의의 핵심 쟁점
연령을 낮추자는 측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요즘 13세는 예전의 13세가 아니라는 겁니다. 정보 습득 속도, 사회적 경험, 신체 발달 모두 빨라졌으니 법적 책임 기준도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측면에서 이 논리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합니다. 형벌 만능주의(刑罰萬能主義)란 처벌 강화만으로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범죄학 연구들은 이 접근이 단기 효과는 있어도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지적해왔습니다. 가정 환경, 심리적 불안,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가 청소년 범죄의 토양이라면, 연령 기준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 그 토양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가장 심각하게 지적되는 문제는 인프라 부족입니다. 보호 관찰(保護觀察)이란 재범 방지를 위해 범죄자를 사회 안에서 감시·지도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호 관찰 인력 1인당 담당 인원이 지나치게 많아, 실질적인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은 성평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부분입니다. 전문 소년 교정 시설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정신과적 질환을 가진 청소년을 연계할 의료 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령을 낮춰 형사 처벌 대상자가 늘어나면, 이를 수용할 시설과 인력이 그에 맞게 확충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포화된 교정 시설 안에서 오히려 범죄 학습이 일어나고 재범률이 높아지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소년 교도소가 '범죄 기술을 배우는 학교'가 된다는 우려는 빈말이 아닙니다.
이번 권고안 논의에서 제가 주목하는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연령 하향 여부: 14세에서 13세로 낮출 경우 형사 처벌 대상이 확대되지만, 실질적인 억제 효과에 대한 연구 근거는 아직 불충분합니다.
- 인프라 선행 조건: 보호 관찰 인력 확충, 전문 교정 시설 신설, 의료 기관 연계 체계 구축이 연령 조정보다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 피해자 지원 강화: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사과조차 받지 못하는 피해자를 위한 별도 지원 체계와 피해 회복 절차가 권고안에 포함돼야 합니다.
-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형사 책임 연령을 너무 낮게 설정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협의체는 유엔 아동권리위원장과의 면담도 예정하고 있습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은 아동의 권리를 국제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조약으로, 한국도 1991년에 비준했습니다. 이 기준과 국내 법체계 사이의 충돌을 정밀하게 검토하는 데 두 달이 충분한지, 솔직히 저는 회의적입니다. 협의체 결론이 최종 결론이 아니라 국무회의 토론을 거친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론에 떠밀린 속도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출처: UN 아동권리협약 원문(OHCHR)
권고안이 나온 뒤, 실제로 달라질 수 있는 것들
이달 말 협의체가 권고안을 내면, 이후 국무회의 토론을 거쳐 최종 결론이 나옵니다. 연령 하향이 결정되더라도 소년법 개정이라는 입법 절차가 남아 있어, 실제 시행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제가 직접 살펴보니, 현재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정보 부족'입니다. 촉법소년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활용할 수 있는 민사 절차,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신청, 피해자 지원 기관 연계 등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무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출처: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법률 상담과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도 생각보다 적습니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란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화와 합의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방식의 사법 절차입니다. 처벌 중심이 아닌 관계 회복을 목표로 하는 이 접근법은 이미 일부 학교폭력 사안에서 시범 적용되고 있습니다. 연령 하향 여부와 관계없이, 이 시스템을 촉법소년 관련 사건에 더 넓게 적용하는 방향도 권고안에 담겨야 한다고 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논의 초반에는 연령 하향 찬반에만 초점이 맞춰지다가, 협의체가 진행되면서 인프라 부족, 피해자 지원 공백, 국제 기준과의 불일치 같은 구조적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겁니다. 어쩌면 이번 논의의 진짜 성과는 연령 결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동안 외면해온 시스템의 민낯을 공식적으로 드러냈다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연령 하향이 범죄 억제력을 가질지, 아니면 낙인 효과(Stigma Effect, 즉 전과 기록이 오히려 재범 가능성을 높이는 역효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하나입니다. 권고안이 '국민 감정을 달래는 숫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보호받고 가해자는 진짜로 교화되는 시스템의 청사진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촉법소년 관련 피해를 입으셨다면, 전문 법률 기관에 상담하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1013560004482?dtypecode=pancode_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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