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매립지 직매립 (직매립 금지, 예외 허용, 환경 정의)
매주 분리수거 날이면 저는 종량제 봉투를 들고 나가면서 늘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정말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 걸까?' 올해 초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 조치가 시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의구심이 조금은 걷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서울과 경기 지역 쓰레기 5,380톤이 다시 인천 수도권매립지로 쏟아졌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 그 기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직매립 금지, 그런데 한 달 만에 5,380톤이 반입된 이유
직매립(直埋立)이란 쓰레기를 소각이나 재활용 처리 없이 땅에 그대로 묻는 방식을 말합니다. 매립지의 수명을 급격히 단축시키고, 침출수(浸出水) 오염 같은 2차 환경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에 선진국 대부분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직매립을 제한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에 대한 직매립 금지 조치를 공식 시행했고, 실제로 1, 2월 반입량은 전년 대비 약 92% 줄어들었습니다.
문제는 3월 23일부터 적용된 '예외 허용' 조치입니다. 소각 시설의 고장이나 정비처럼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지방자치단체 간 협의를 거쳐 직매립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인데, 이 예외 조항이 발동된 지 딱 한 달 만에 경기도 3,688톤, 서울시 1,692톤, 합계 5,380톤이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에 반입됐습니다. 차량으로 환산하면 462대입니다. 같은 기간 인천시는 직매립 반입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숫자가 어느 지역의 일방적 부담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저도 인천 서구 인근을 지나다 끝도 없이 줄 선 쓰레기 운반 차량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묘한 불편함, '저게 어디서 온 걸까' 싶었던 감각이 이번 수치와 맞닿는 순간, 솔직히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예외 허용량 16만 3,000톤, '예외'가 맞기는 한 건가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수도권 3개 시·도가 합의한 올해 예외적 직매립 허용량은 총 16만 3,000톤입니다. 얼핏 보면 숫자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데, 맥락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직매립량은 52만 4,000톤입니다. 즉, 이번 예외 허용량은 그 31%에 해당합니다. '불가피한 예외'가 전체 평균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셈입니다.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란 환경 오염의 피해와 혜택이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에 비춰보면, 서울과 경기가 배출한 쓰레기를 인천이 처리하는 구조는 그 자체로 이미 불균형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31%짜리 예외 조항이 더해지면, '금지'라는 단어가 사실상 의미를 잃게 됩니다.
인천 지역 시민단체들이 즉각 반발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수도권매립지문제해결범시민운동본부는 이번 예외 허용이 "정부의 준비 부족을 주민의 희생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출처: 한국일보). 저는 이 표현이 과격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확한 진단이라고 봅니다.
이번 사태의 핵심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예외 허용량(16만 3,000톤)이 연평균 직매립량의 31%에 달해, '금지' 원칙의 실효성이 크게 훼손됐습니다.
- 소각 시설 증설 등 근본 대안 마련 없이 예외 규정을 먼저 발동함으로써, 정책 설계 자체의 허점이 드러났습니다.
- 수도권 쓰레기 처리 부담이 인천 한 곳에 편중되는 구조가 다시 고착화될 우려가 생겼습니다.
- 시민들에게는 철저한 분리배출과 감량을 요구하면서, 행정 주체는 손쉬운 예외 조항에 의존하는 이중성이 드러났습니다.
소각 시설 부족, 준비 없이 금지만 선언한 결과
사실 직매립 금지는 갑작스러운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수도권매립지 사용 종료 논의는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고, 직매립 금지 역시 예고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금지를 시행하자마자 두 달도 안 돼 예외 조항을 꺼내든 것은, 그사이에 소각 용량 확충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소각 용량(Incineration Capacity)이란 지자체가 보유한 소각 시설에서 하루 또는 연간 처리할 수 있는 폐기물의 최대 양을 의미합니다. 직매립 금지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이 소각 용량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각 시설은 주민 반대, 예산, 부지 확보 등 복합적인 이유로 증설이 매우 더딥니다. 환경부의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소각 시설은 현재 처리 수요를 온전히 감당하기에 부족한 수준이며, 이는 이번 예외 허용이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합니다(출처: 환경부).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분리배출 정책이 강화될 때도 현장 수거 인프라는 따라오지 못했고, 결국 재활용 선별장에서 상당량이 다시 매립지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책의 방향은 맞는데, 그 방향을 실현할 인프라와 일정이 맞물리지 않는 문제는 반복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측 가능했던 실패입니다.
폐기물 처리 체계에서 '소각 → 에너지 회수 → 잔재 매립'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자원순환(Resource Circulation)이라고 합니다. 이 자원순환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소각 시설이 충분해야 하고,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전력이나 난방으로 전환하는 에너지 회수 시스템도 갖춰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소각 용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직매립만 금지하면, 그 공백은 결국 예외 조항이 채우게 됩니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같은 일이 내년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민 실천이 무력해지는 순간, 신뢰도 무너진다
저는 종량제 봉투 사용을 줄이려 꽤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헷갈리는 재활용 분류도 검색해가며 처리합니다. 그것이 실질적인 환경 보호로 이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수치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시민에게는 철저한 분리배출을 요구하면서, 행정 주체가 소각장 정비를 이유로 손쉽게 예외 조항을 꺼내 드는 상황은 이중성처럼 느껴졌습니다.
환경 심리학에서 '모럴 라이선싱(Moral Licens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착한 행동을 했다는 느낌이 오히려 이후 행동의 면죄부가 된다는 현상인데, 행정 역시 이와 비슷한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직매립 금지를 선언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면죄부가 되어, 정작 그 선언을 뒷받침할 인프라 투자는 소홀히 하는 구조 말입니다.
시민의 신뢰는 한 번 흔들리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분리배출 캠페인이나 자원 감량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시민들이 "내 행동이 실제로 결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땜질식 예외 허용이 반복되면 그 믿음은 서서히 소진됩니다. 제가 이번 기사를 읽으며 가장 씁쓸했던 지점도 바로 거기였습니다. 5,380톤이라는 숫자보다, 그 숫자가 만들어내는 무력감이 더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정리하면, 이번 직매립 예외 허용 사태는 정책 방향은 옳지만 실행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선언부터 한 결과입니다. 지금이라도 예외 허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줄이고, 소각 시설 증설과 지자체 간 갈등 조정에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인천 시민의 희생 위에 수도권의 쾌적한 일상이 유지되는 구조는, 언제까지고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분리배출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시민들이 정책에 등을 돌리기 전에, 행정 스스로 먼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 참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2613450003333?dtypecode=pancode_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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