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 주거불안 (임대차특약, 보호자교육, 빅데이터)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전국 313만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313만 가구 중 임차인의 절반 가까이가 "계약이 끝나면 살 집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을 안고 삽니다. 저도 몇 년 전 강아지와 함께 이사를 준비하며 그 불안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보증금을 더 얹겠다고 해도, 도배·장판 비용을 미리 예치하겠다고 해도 돌아오는 건 퇴짜뿐이었습니다.

임대차특약, 반려인을 보호하는 계약서는 왜 없을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임차인과 집주인 사이의 갈등은 지금 전적으로 '사적 계약'의 영역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임대인(賃貸人)이란 부동산을 빌려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내 재산이 훼손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고, 임차인(賃借人) 즉 세를 들어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습니다. 그 사이 어디에도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한국리서치와 서울대 수의대 천명선 교수 연구팀이 전국 반려동물 양육 가구 2,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출처: 한국일보), 임차 가구 반려인의 46.3%가 계약 만료 후 살 집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응답했습니다. 게다가 32.9%는 계약이 끝난 뒤 반려동물로 인한 배상 청구를 받을까 봐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내 얘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어떤 집주인은 "개 키우는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다"며 문전박대를 했습니다. 번듯한 직장과 소득 증빙이 있어도 반려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할 수 없는 세입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겨우 집을 구했을 때 느낀 것은 안도감보다 상실감이었습니다. 제 가족인 강아지가 누군가에게는 '재산 가치를 떨어뜨리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더 마음 아팠습니다.

해결책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반려동물 표준 임대차 특약(標準 賃貸借 特約)'을 제도화하면 됩니다. 표준 임대차 특약이란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 시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조건 항목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로 인한 파손 범위, 원상 복구 기준, 보증금 예치 방식 등을 명문화한다면 임대인의 막연한 거부감을 줄이고 임차인의 주거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싫으면 나가라" 식의 구조를 방치하는 것은 제도의 직무유기입니다.

이사 후에도 옆집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우리 강아지가 짖을까 봐 까치발로 걷던 기억이 납니다. 반려인에게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살얼음판입니다. 그 살얼음판을 걷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공백입니다.

보호자교육, 의무가 되어야 권리도 생긴다

반려인들 사이에서 이웃 갈등은 빼놓을 수 없는 화제입니다. 혹시 아파트에 사시면서 반려동물 때문에 이웃과 불편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8.2%가 실제로 이웃과 갈등을 겪었다고 답했습니다. 주요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실내 짖음 문제 (46.7%) —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층간 소음과 결합되면 갈등이 급격히 커집니다.
  2. 실외 짖음 문제 (32.1%) —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짖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3. 달려들기·물기 등 위협 행동 (28.6%) — 산책 중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배설 문제 (25.3%) — 공용 공간에서의 배설 처리 미흡이 주된 원인입니다.

이 네 가지 원인 중 상당수는 훈련과 교육으로 충분히 완화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갈등을 겪은 양육자의 3분의 1은 방치하거나 이사를 가거나 반려동물을 다른 곳으로 보냈습니다. 이건 개인의 무책임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결과'라고 저는 봅니다.

사회화 훈련(Socialization Train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회화 훈련이란 반려동물이 다양한 사람, 환경,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훈련을 뜻합니다. 짖음이나 공격성 문제의 상당 부분은 이 과정이 부족했을 때 생깁니다. 반려동물을 처음 데려올 때 이 개념을 알았다면 달랐을 보호자가 얼마나 많을까요.

천명선 교수는 자격 심사가 계층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저도 그 우려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의무 교육 이수는 다릅니다. 보호자 의무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한 반려인이 82.2%에 달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국가 단위로 의무 교육을 이수한 반려인에게 공공 임대주택 입주 가점을 부여하거나, 해당 임차인을 받아들인 집주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Incentive) 정책을 결합한다면 어떨까요. 인센티브란 특정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제공하는 금전적 또는 비금전적 혜택을 뜻합니다. 교육의 실효성과 주거 안정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반려인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가 될 각오를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반려동물을 데려온 뒤 건강에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이나 문제 행동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허둥대는 경험은 저도 해봤습니다. 그때 인터넷과 서적을 뒤지며 공부했지만, 처음부터 체계적인 교육이 있었다면 반려동물도, 저도 덜 고생했을 겁니다.

빅데이터 없이 정책도 없다, 기초부터 다시 쌓아야

정부가 반려동물 정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기초 통계조차 부실하다는 현실을 알고 나서는 "위원회를 만들기 전에 데이터부터 쌓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려동물 등록 현황을 집계하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이 운영 중이지만(출처: 동물보호관리시스템), 가구별 양육 실태와 주거 형태를 연동한 통합 데이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이란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반려동물 등록 및 유기동물 현황을 관리하는 국가 시스템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수집하는 정보는 등록 여부와 개체 정보에 그칩니다. 양육 가구의 주거 형태가 자가인지 임차인지, 이웃 갈등을 겪었는지, 의료비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정책 입안자가 이 상태에서 "동물 전용 공공주택을 만들겠다"고 해봤자 얼마나 공급해야 하는지, 어느 지역에 집중해야 하는지 근거가 없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전체의 15%를 넘어선 시점에도 기초 통계가 부실하다는 것은 명백한 행정 공백입니다. 반려 가구 빅데이터(Big Data)를 구축해야 합니다. 빅데이터란 기존 데이터베이스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대규모·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기술 및 그 데이터를 뜻합니다. 반려동물 등록제를 넘어 가구별 양육 실태, 주거 형태, 이웃 갈등 이력, 의료비 지출까지 연동한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만 탁상행정이 아닌 실질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매년 유기되는 반려동물이 약 11만 마리로 추정된다는 수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정'이라는 단어가 거슬립니다. 수십만 생명의 이야기를 추정으로 다루는 사회가 과연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보호자 5명 중 1명이 유기의 원인으로 '보호자 의무에 대한 규제 부족'을 꼽았다는 사실은, 반려인 스스로도 더 촘촘한 제도를 원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반려동물 관련 세금을 걷어 제도를 운용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이 방향이 맞다고 봅니다. 동물 등록을 제도화하며 관련 세수를 확보하고, 그 재원으로 보호자 교육 프로그램과 반려 가구 전용 공공주택을 운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보호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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