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경력 승진 특혜 판결 (호봉 가산, 직급 차별, 성차별)
군 복무 경력이 신입사원의 호봉을 높이는 것을 넘어 직급 자체를 올려주고, 그 결과 승진까지 앞서가게 만드는 인사 제도는 성차별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저도 인턴 시절 비슷한 구조를 직접 목격했는데, 당시엔 막연히 이상하다고만 느꼈던 것이 이번 판결을 보고 나서야 법적으로 정확히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입사 첫날부터 달랐던 출발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인턴 시절 제가 몸담았던 공공기관에서는 같은 날 입사한 동기들 사이에서도 첫날부터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공개채용으로 동일한 과정을 거쳐 들어왔는데도, 군 필자 남성 동기는 여성 동기보다 두 단계 높은 직급으로 시작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당시엔 "당연히 군대 다녀온 사람이 혜택받는 거 아냐?"라고 넘어갈 분위기였습니다만, 몇 달이 지나면서 그게 단순히 월급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문제가 된 인사 제도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일반 신입사원은 6급 10호봉으로 시작하는 반면, 군 경력 2년을 가진 제대군인은 호봉(號俸)이 2호봉 가산되어 5급 12호봉으로 입사합니다. 호봉이란 같은 직급 안에서 근속 연수나 경력에 따라 임금을 단계별로 구분한 체계를 말합니다. 문제는 이 호봉 가산이 직급 자체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 데 통상 2년이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5급으로 시작하는 남성 신입사원은 그 2년의 경쟁을 통째로 건너뛰게 됩니다.
제가 목격한 현장도 정확히 이랬습니다. 여성 동기들은 동일한 업무를 소화하고 비슷한 성과를 냈는데도, 구조적으로 2년을 더 기다려야 선배와 같은 직급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군대도 안 다녀온 죄"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습니다.
호봉 가산과 직급 차별, 무엇이 다른가
이번 판결에서 서울행정법원이 핵심적으로 구분한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재판부는 군 경력에 따른 호봉 가산 자체, 즉 임금을 더 주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흔히 '제대군인법'이라 불리는 이 법률은 군 복무 기간을 근무 경력으로 인정해 임금에 반영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이는 국방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보전해 주는 취지로, 합리적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것이 승진(昇進)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다르다고 봤습니다. 승진이란 조직 안에서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단순히 급여 수준이 아니라 권한, 책임, 조직 내 지위 자체가 달라지는 변화입니다. 제대군인법 어디에도 군 경력을 승진에 반영하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승진에서 성별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남녀고용평등법).
제가 경험한 그 조직에서 여성 동기들이 느꼈던 불쾌감의 본질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돈을 덜 받는 것보다, 조직 안에서 영구적으로 '후배'로 분류되는 구조가 더 큰 문제였습니다. 직급은 업무 지시권과 연결되고, 그것은 곧 조직 내 발언권과도 이어집니다. 단순한 급여 격차가 아니라, 커리어 전체의 경로가 달라지는 문제였습니다.
이 판결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것
이번 판결의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군 경력에 따른 호봉 가산, 즉 임금 차등은 제대군인법에 근거가 있으므로 합법입니다.
- 단, 호봉 가산이 직급 자체의 상승으로 이어져 승진 경쟁에서 유리한 출발점을 제공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 인권위가 이 진정을 기각한 것은 위법하며, 인권위는 다시 진정을 심사해야 합니다.
- 기업들은 군 경력을 인사 제도에 반영할 때, 임금 영역과 직급·승진 영역을 명확히 분리해야 합니다.
여기서 실력주의(Meritocracy)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실력주의란 학벌, 성별, 배경 같은 외적 요소가 아닌 실제 업무 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보상하는 원칙을 말합니다. 군에서의 2년은 국가를 위한 헌신이지만, 그것이 해당 회사의 직무 전문성과 직결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직급을 통째로 높여 준다면, 실력주의 원칙은 처음부터 흔들리게 됩니다.
한편,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회사의 인사 규정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공기관을 비롯해 유사한 구조를 가진 조직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인턴으로 일했던 그 기관도 지금쯤은 내부적으로 인사 규정 검토를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판결이 업계 전반에 기준선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인사 담당자가 지금 해야 할 것
제 경험상 이런 문제는 인사 규정이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라는 관성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봉제(號俸制), 즉 근속 연수와 경력에 따라 임금을 자동으로 올려주는 임금 체계는 공공부문과 일부 민간 기업에 아직 광범위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체계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군 경력 반영 방식이 직급 구조와 얽혀 있다면 이번 판결 이후 법적 리스크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성차별적 고용관행(Discriminatory Employment Practice)이란 채용, 임금, 승진, 교육 등 고용의 전 과정에서 성별을 이유로 불합리한 차등을 두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이 내부 고충 처리나 인권위 진정을 넘어 행정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이 준 메시지입니다.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지금이 내부 규정을 재검토할 타이밍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군 경력 반영이 임금에만 작동하는가, 아니면 직급이나 호칭에도 영향을 주는가. 그리고 그 구분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명확히 문서화되어 있는가.
취업규칙(就業規則)이란 사업주가 근로자들에게 적용할 근로 조건이나 복무 규정을 문서로 정한 것으로, 10인 이상 사업장은 노동부에 신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취업규칙 안에 군 경력 반영 방식이 모호하게 기술되어 있다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명확하게 손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판결이 남긴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군 복무에 대한 예우와 조직 내 공정한 경쟁은 서로 충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임금으로 보상하되, 승진은 실제 직무 역량으로 평가하면 됩니다. 지금 소속된 회사나 기관의 인사 규정에 군 경력 반영 조항이 있다면, 그것이 임금에 한정된 것인지 직급과도 연결되는지 한 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인사 제도 검토나 법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 노동 전문 변호사나 공인노무사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1910270000610?dtypecode=pancode_society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