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레나 창동 (베드타운, 라이브인더스트리, 젠트리피케이션)
내년 5월, 창동에 2만 8,000석 규모의 서울아레나가 문을 엽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오랫동안 '4호선 끝자락'이라는 말이 어울리던 동네가, 세계적인 K컬처 거점으로 탈바꿈한다는 이야기니까요. 설레면서도 마음 한켠이 복잡한 것도 사실입니다.
베드타운의 기억, 그리고 플랫폼 61
창동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기 사는 사람들은 문화생활을 어디서 즐기나"였습니다. 탄탄한 주거 인프라에 비해 즐길 거리가 눈에 띄게 부족했고, 대형 콘서트 하나를 보려면 잠실이나 고척돔까지 한 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것이 이 동네의 일상이었습니다. 그 갈증을 소박하게나마 달래주던 공간이 창동역 인근의 컨테이너 문화공간 '플랫폼 61'이었습니다. 재활용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임시 공간이었지만, 작은 전시와 공연이 꾸준히 열리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적 숨구멍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느낀 건, 사람들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지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서울아레나 개관 소식은 단순한 공연장 하나가 생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베드타운(Bed Town)이란 낮에는 인구가 빠져나가고 밤에만 사람이 돌아오는, 주거 기능만 특화된 도시를 뜻합니다. 창동·상계 일대가 오랫동안 그 전형적인 모습이었다면, 이제 서울시가 2조 7,000억 원을 투입해 그 공식을 깨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연간 100회 이상의 공연, 창동역에 'K엔터타운역'을 병기하는 계획까지 발표된 것을 보면, 이것이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서울시가 이번에 도입하는 '커넥티브 라이브(Connective Live)'도 눈길을 끕니다. 커넥티브 라이브란 공연장 안의 무대를 창동 일대 거리 곳곳에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시스템으로,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도 공연의 열기를 거리에서 함께 느낄 수 있게 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공연장 바깥이 또 하나의 공연 공간이 되는 구조입니다.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나 런던의 사우스뱅크가 거리 자체로 하나의 문화 경험이 되는 것처럼, 창동도 그런 방향을 꿈꾸는 것으로 읽힙니다.
라이브 인더스트리, 기대와 현실 사이
서울시가 이번 계획에서 꺼낸 핵심 개념은 '라이브 인더스트리(Live Industry)'입니다. 라이브 인더스트리란 공연·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과 일자리가 자생적으로 선순환하는 도시 경제 모델을 뜻합니다. 공연장을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숙박·식음료·쇼핑·스튜디오·연습 공간까지 하나의 생태계로 키워내겠다는 구상입니다. 실제로 시는 창동역 복합환승센터를 중심으로 숙박시설 700실 확보와 K푸드 마켓 조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해외 사례를 들여다봤는데, 이런 모델이 성공하려면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가 중요합니다. 영국 맨체스터의 'MediaCityUK'는 BBC와 ITV 등 미디어 기업을 유치하면서 주변 상권과 주거지가 함께 성장한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반면 일부 도시에서는 대형 공연 시설을 지어놓고도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아 유휴 시설로 전락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번 계획이 K팝 열풍에만 지나치게 기대는 구조라면, 트렌드가 변했을 때 리스크가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울시가 내년 중 창동 일대를 문화·관광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개발진흥지구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용적률 완화, 세제 지원 등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특별 구역을 뜻합니다. 이번 경우 최대 용적률이 1,300%까지 완화될 예정인데, 이는 일반 주거지역 기준(약 200~300%)의 네 배를 훌쩍 넘는 수치입니다. 민간 투자 유치 측면에서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되겠지만, 동시에 그 이면을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의 관련 정책 자료는 서울시 도시계획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계획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연간 100회 이상 공연이 예정된 2만 8,000석 규모의 전문 대중음악 공연장으로, 동북권 주민의 문화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됩니다.
- 커넥티브 라이브 시스템으로 공연 당일 창동 일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축제 공간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 숙박 700실, K푸드 마켓, 쇼핑 거리 조성으로 단순 관람을 넘어 체류형 소비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포함됩니다.
- 문화·관광 특정개발진흥지구 지정으로 민간 자본이 자발적으로 유입될 유인이 만들어집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조명이 켜지면 생기는 그림자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문제입니다. 대규모 개발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지역에 외부 자본과 새로운 상권이 유입되면서 지가와 임대료가 급등하고, 기존에 살던 저소득 주민이나 소규모 상인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합니다. 홍대, 성수, 이태원이 각각의 방식으로 이 과정을 겪었고, 창동 역시 예외가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창동의 색깔을 오랫동안 만들어온 것은 대형 자본이 아니었습니다. 골목의 소규모 식당, 오래된 책방,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작은 공방들이 쌓아온 결이 있었습니다. 1,300%의 용적률 완화와 민간 투자 촉진이라는 조합은 이 결을 빠르게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를 받은 대형 자본이 들어오면 임대료는 오르고, 오래된 가게들은 버티지 못하는 구조가 됩니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서도 대규모 문화 개발 사업이 지역 원주민 이탈을 가속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출처: 서울연구원)
물론 이런 우려가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창동 주민들의 교통 혼잡 문제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현재도 출퇴근 시간이면 창동역이 환승 인파로 상당히 혼잡한데, 공연이 열리는 날 3만 명 가까운 인파가 한꺼번에 빠져나올 경우 기존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불편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복합환승센터 조성 계획이 포함됐다고는 하지만, 교통망 확충이 공연장 개관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화려한 조명이 켜지는 만큼, 그 그림자가 기존 주민들의 일상을 덮지 않도록 세밀한 사회적 안전망 설계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아레나 개관이 창동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진심입니다. 오랫동안 변방 취급을 받아온 동북권 주민들이 집 근처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직결됩니다. 다만 2조 7,000억 원짜리 청사진이 현실에서 빛을 발하려면, 공연장이 문을 여는 그날보다 그 이후 5년, 10년의 운영 방식이 더 중요합니다. 창동이 '한때 핫했던 동네'로 기억되지 않으려면, 화려한 하드웨어만큼 지역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는 소프트웨어 전략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 참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2111210001813?dtypecode=pancode_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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