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작업복 세탁소 (행정 지연, 산업보건, 노동복지)
대구시가 2023년 수립한 노동 기본계획에 작업복 공동 세탁소 3곳 설치를 약속했지만, 2025년 현재 운영 중인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산업단지 인근에서 작업복을 손빨래하거나 일반 빨래와 분리해 씻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저는 이것이 개인의 성실함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오래전부터 느껴왔습니다.
산업단지 노동자의 작업복, 집에서 세탁해도 정말 괜찮을까요
솔직히 처음에는 작업복 세탁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산업단지 인근 대중교통에서 퇴근길 노동자들 옆에 앉아본 적 있으신가요? 코끝을 찌르는 금속성 기름 냄새와 뻣뻣하게 굳어버린 작업복의 질감은 그 노동이 얼마나 고된지를 말없이 보여줍니다. 저도 그 뒷모습에서 행정의 부재를 읽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냄새나 질감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업복에 남아 있는 금속 분진(Metal Dust)이란 철이나 알루미늄 같은 금속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입자를 말합니다. 이 입자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피부나 호흡기에 침투해 직업성 피부질환이나 진폐증(Pneumoconiosis, 분진이 폐에 쌓여 폐 기능을 저하시키는 직업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가정용 세탁기로 돌려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기름때 속에는 이런 유해물질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 작업복 전용 세탁기가 없어 손빨래를 하는 분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가장 걱정한 것은 자신의 피부가 아니라 세탁조에 남은 잔여물이 아이들 옷에 묻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심리적 부채감은 매일 반복됩니다. 화학물질 오염(Chemical Contamination)이란 세탁 과정에서 유해 화학 성분이 물과 함께 다른 세탁물로 옮겨가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일수록 이 위험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대구는 제조업 사업장의 95% 이상이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입니다. 이 말은 개별 사업체가 자체적으로 전문 세탁 인프라를 갖추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노동자 혼자서 유해물질을 집으로 가져가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다른 도시는 이미 하고 있는데, 대구는 왜 이렇게 늦을까요
전국 6개 광역시 중 대구를 제외한 부산, 대전, 광주, 울산은 이미 작업복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천시는 다음 달부터 작업복 1장당 500원~1,000원으로 수거·세탁·건조·배송까지 해주는 '천원 세탁소' 사업을 시작합니다. 심지어 기초자치단체인 구미시는 2021년부터 'MY구미클리닝'을 운영 중이고, 포항·경산에서도 유사한 시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대구는 어떤 상황일까요? 대구시는 2023년 '근로자 권리보호 및 복리증진 기본계획(2024~2028)'을 수립하면서 성서산업단지(2025년), 염색산업단지(2027년), 근로자복지센터(2028년) 3곳에 순차적으로 작업복 세탁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계획에는 총 9,198억 원이 배정됐고, 공동세탁소 운영 예산만 21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2025년이 된 지금, 성서산단 세탁소는커녕 구체적인 추진 일정조차 없습니다. 시 관계자는 "예산이 여의치 않았다"고 했고, "차기 시장이 선출된 이후에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발언을 읽고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 9,000억 원짜리 계획을 발표하면서 21억 원이 없다는 설명이 과연 납득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이것은 전형적인 전시행정(Show Administration)의 결과라고 봅니다. 전시행정이란 실질적인 실행 의지 없이 겉으로 보여주기 위해 계획을 발표하는 행정 관행을 말합니다. 9,000억 원 규모 계획의 일부인 21억 원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 사업에 진지한 의지가 없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아래는 대구와 다른 도시의 현황을 비교해 정리한 것입니다.
- 구미시: 2021년부터 'MY구미클리닝' 운영 중. 이용료 500~1,000원 수준
- 인천시: 2025년 5월부터 '천원 세탁소' 시작. 수거·세탁·건조·배송 일괄 서비스
- 부산·대전·광주·울산: 이미 작업복 세탁소 도입 완료
- 대구시: 2025년 운영 예정이었던 성서산단 세탁소 미착공. 나머지 2곳도 계획 불투명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와 금속노조 대구지부는 올해 성서1·2차 산업단지 노동자를 대상으로 유해물질 노출 실태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노동계가 직접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현실 자체가, 행정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출처: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업 현장 유해물질 노출 관리는 사업주와 지방자치단체의 공동 책임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작업복 세탁소는 복지가 아니라 산업보건 인프라입니다
작업복 공동 세탁소를 단순한 편의 시설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것이 완전히 잘못된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설은 산업보건(Occupational Health) 인프라입니다. 산업보건이란 노동 환경에서 발생하는 건강 위협 요인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말합니다. 작업복이 전문적으로 세탁되지 않으면, 현장의 위험은 퇴근과 함께 가정으로 이동합니다.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역지회는 "노동자들이 매일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있음에도 대책은 미비하다"고 밝혔습니다. 작업장 내 유해물질 기준치 초과 여부는 산업안전보건법(Industrial Safety and Health Act)으로 관리하게 되어 있는데, 이 법은 사업장 내 노출 관리는 규정하지만 퇴근 후 작업복을 통한 2차 노출까지 막는 인프라는 결국 지자체가 나서야 합니다. (출처: 안전보건공단은 작업복을 통한 유해물질 가정 내 유입을 직업병 예방의 중요 변수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작업복은 노동자의 품격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부지런함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인프라로 뒷받침해야 할 생존의 문제입니다. 특히 대구처럼 영세 사업장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도시에서는 공공 세탁 인프라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합니다. 노동자가 건강해야 산업이 돌아가고, 산업이 살아야 도시에 미래가 있다는 것은 행정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대구시는 지금이라도 '차기 시장 이후'라는 말을 거둬들이고, 구체적인 추진 일정과 예산 확보 방안을 공개해야 합니다. 이미 운영 중인 구미나 인천의 사례는 이 사업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21억 원의 예산이 문제라면, 9,000억 원 계획 어디서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것인지부터 답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선거 이후로 미루는 것은 행정의 책임 방기입니다. 이 글이 대구 지역 노동 환경에 관심 있는 분들과 문제의식을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 참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2114330002998?dtypecode=pancode_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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