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태양광 수돗물 (탄소중립, 직접PPA, 에너지자립)
솔직히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또 보여주기식 태양광 사업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자체가 유휴부지에 패널 몇 장 깔고 '탄소중립 선도 도시'라는 타이틀을 다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광주시가 이번에 용연정수장에 구축한 모델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제가 알던 방식과는 구조 자체가 달랐습니다. 생산한 전기를 바로 그 자리에서 수돗물 만드는 데 쓴다는 발상이 핵심이었습니다.
계통 한계와 출력 제어, 재생에너지의 오래된 벽
재생에너지 정책 흐름을 오래 지켜보면서 제가 가장 답답하게 느낀 부분은 바로 출력 제어(Output Curtailment) 문제였습니다. 출력 제어란 전력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할 때 멀쩡히 작동 중인 발전기를 강제로 멈추는 조치입니다. 햇볕이 쨍쨍한 날 태양광 패널을 가동 중단시킨다는 게 말이 되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게 현실입니다. 특히 제주도와 전남 지역에서 이런 비효율이 반복됐고, 재생에너지 확산에 진심인 사람들조차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문제의 뿌리는 계통(Grid), 즉 전력망 구조에 있습니다. 계통이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송전선과 변전소를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전체 네트워크를 뜻합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대형 발전소 중심의 중앙집중형 계통을 유지해왔고, 분산된 재생에너지를 흡수할 유연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은 열심히 전기를 만들어도 팔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어왔습니다.
일반적으로 태양광발전은 남는 전기를 한국전력에 팔면 그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관련 사례들을 살펴보니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한전의 송배전망을 통해야 한다는 의무 자체가 비용과 비효율을 구조적으로 낳고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광주시의 이번 접근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직접PPA 방식이 뭐가 다른가, 수돗물로 증명하다
광주 상수도사업본부가 이번에 도입한 방식은 직접전력거래계약(PPA, Power Purchase Agreement)입니다. PPA란 발전사업자와 전력 소비자가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력 공급 계약을 맺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한전이라는 중간 유통 단계 없이 바로 소비처로 연결하는 구조입니다.
광주시는 동구 용연정수장 유휴부지 1,442㎡에 300k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고, 여기서 나오는 전기를 PPA 방식으로 수돗물 생산 공정에 직접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발전소 옆에 소비처를 붙여놓은 셈이니 송배전 손실(Transmission Loss)도 최소화됩니다. 송배전 손실이란 전기가 긴 전선을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열 등으로 사라지는 에너지를 말합니다. 먼 곳에서 전기를 끌어올 때 생기는 낭비를 원천 차단한 것입니다.
이 사업은 광주 상수도사업본부와 빛고을시민햇빛발전 사회적협동조합, 현대건설이 민관 협약을 맺고 추진했습니다. 계약 기간은 기본 10년이고, 최대 30년까지 연장이 가능합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시민 사회가 직접 협동조합 형태로 참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에너지 사업이 관청과 대기업만의 영역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의지가 반영된 구조로 설계됐다는 것, 이게 단순한 행정 프로젝트와 이 사업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라고 봤습니다.
이번 모델이 기존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존 방식: 태양광 발전 → 한국전력 판매 → 한전 송배전망 경유 → 소비자 공급 (중간 비용 발생, 출력 제어 리스크 상존)
- PPA 방식: 태양광 발전 → 소비자(용연정수장)와 직접 계약 → 한전망 우회 → 현장 즉시 소비 (비용 절감, 계통 부담 감소)
- 공공 RE100 연계: 수돗물 생산이라는 필수 공공 서비스를 재생에너지로 대체 → 지자체 탄소중립 실적으로 직결
공공 RE100(Renewable Energy 100%)이란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전력 전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말합니다. 수돗물 생산은 전력 소모가 상당한 공정입니다. 정수 과정에서 펌프와 처리 설비가 연속적으로 가동되기 때문입니다. 이 전력 소비를 태양광으로 대체했다는 건 공공 부문 RE100 달성 전략으로서 꽤 영리한 선택입니다. REN21의 2024 글로벌 재생에너지 현황 보고서에서도 재생에너지 직접 조달 방식의 확대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의 핵심 경로 중 하나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300kW라는 숫자, 상징인가 실질인가
제가 이 사업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숫자 때문입니다. 300kW. 이 규모가 용연정수장 전체 전력 소비에서 얼마나 되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중대형 정수장의 연간 전력 소비는 수백만 kWh 수준에 달합니다. 300kW짜리 태양광이 하루 평균 3~4시간을 풀가동해도 연간 생산량은 330~440MWh 수준에 그칩니다. 전체 소비량의 일부를 담당하는 것은 맞지만, '탄소중립'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충분한 규모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를 달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전시행정'이 되지 않으려면 이 모델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넓게 복제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광주시가 '전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다른 지자체들은 아직 규제나 비용 구조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직접 PPA 제도가 보편화되려면 전력 시장의 구조적 개편이 뒤따라야 하고, 이에 관해 산업통상자원부도 재생에너지 직접 거래 활성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민관 협력의 지속 가능성도 짚어볼 대목입니다. 10년에서 최대 30년에 이르는 장기 계약은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변수도 많습니다. 태양광 모듈의 출력 저하율(Degradation Rate), 즉 패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장기적으로 수익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결정질 실리콘 패널의 연간 출력 저하율은 0.5~0.7%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년이면 5~7%, 30년이면 15~21%까지 초기 대비 발전량이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유지보수 비용과 수익 배분이 시민사회 협동조합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세밀한 계약 조건 관리가 필요합니다.
제 경험상 좋은 정책이 나빠지는 이유는 대부분 처음 설계 이후의 관리 소홀에 있었습니다. 이 사업이 씨앗을 제대로 뿌린 것은 맞지만, 싹을 틔우고 나무로 키우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시의 이번 모델은 한국 재생에너지 정책에서 보기 드문 실용적 전환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생산과 소비를 하나의 공간 안에서 연결하는 발상, 시민 협동조합을 파트너로 세우는 구조, 그리고 수돗물이라는 공공재에 탄소중립을 입히는 시도까지. 단 300kW라는 숫자에 안주하지 않고, 이 모델을 광주시 전체 공공시설로 빠르게 확산시키는 것이 다음 과제입니다. 만약 이 씨앗이 제대로 자란다면, 다른 지자체들이 따라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탄소중립 로드맵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참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1414040001391?dtypecode=pancode_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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